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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플] '미수다 출신' 중국인 손요 '다문화가정 지킴이' 변신

black sheep wall! 2010. 4. 21. 09:23

[피플] '미수다 출신' 중국인 손요 '다문화가정 지킴이' 변신

 

"한국 사람들 정이 많아요… 그런데 너무 빠르게 살아요"
일본 유학 가려다 한국으로 바꿔
이젠 깍두기·젓갈 김치 없이 못살아
"기회 되면 한국 남자와 결혼하고파"
"외국인에 대한 편견 바뀌었으면"

중국인 순야오(孫瑤·28)는 이제 더 이상 '미녀들의 수다'에 출연하지 않는다. 그러나 '미수다'출신 '손요'로 더 잘 통한다.

벌써 한국에 온지 9년. 한국 사람처럼 말하고, 생각한다. 한국에서 받은 사랑을 한국 사람들에게 되돌려주기 위해 다양하게 활동하고 있다.

베이징 올림픽 때 리포터를 맡았던 것을 계기로 한국과 중국의 문화 나눔에 작은 힘을 보태고 있고, 지난해 10월부터 '미수다' 출신의 외국인 봉사모임인 '나누기(Na Noo Gi)'를 만들어 다문화 가정을 위한 홍보와 홀트아동복지회를 통한 봉사까지 하고 있다.

"제가 한국에서 받은 것이 많은 만큼 어떤 형태로든 돌려주고 싶었어요. 그래서 뜻을 같이 하는 '미수다' 출연자들과 모임을 만들었고, 다문화 가정 등 사회적 약자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일을 하기로 했어요."

손요는 웨이하이제일예고(威海弟一藝高)를 졸업한 뒤 2002년 황해를 건넜다. 하얼빈(哈爾濱)에서 태어나 열살까지 살다 가족이 모두 웨이하이(威海)로 이사해 정착했다. 어릴 때부터 그림 그리기를 좋아해 디자이너의 꿈을 키우고 있던 여고생이었다.

산둥 반도에 자리 잡은 웨이하이는 개방 이후 많은 한국 기업이 진출한 항구 도시다.

"어느 날 하교 길에 귀여운 유치원생이 줄지어 노래하며 지나가는 모습을 봤어요. 생소한 언어였는데 무척 좋게 느껴졌어요. 너무 예뻤어요. 알고 보니 한국어였어요. 이 때부터 조선족 친구에게 무작정 한국어를 배웠어요."

처음 배운 한국어는 "빨리 일어나라"였다. 잠꾸러기인 손요를 깨울 때마다 조선족 친구가 하던 말이다.

"여고를 졸업하면 일본으로 유학 갈 생각이었어요. 부모님도 그렇게 알고 뒷바라지 하셨구요. 그런데 처음 한국 유치원생을 본 뒤부터 마음이 흔들렸어요."

중국 대륙에 한류가 빠르게 퍼져 나가고 있었다. 안재욱을 스타로 만든 드라마 '별은 내 가슴에'가 전파를 탔고, HOT의 노래가 유행했다.

한류 팬이 된 손요도 예외가 아니었다. 한국 노래를 듣기 위해 음반 가게를 자주 찾아갔다.

"한류가 대단했어요. 한번은 안재욱이나 HOT의 CD를 사러 갔다가 '애모'가 들어있는 것을 잘못 샀어요. 그런데 몇 번 들어보니까 이것도 좋아지더라구요. 한국어를 잘 몰랐지만 가사를 모두 외워서 그 땐'애모'를 열심히 불렀어요."

손요는 가까이에서, 아주 쉽게 한국을 배워 나갔다. '한국에 간다'고 마음을 굳혀가고 있을 즈음 공무원인 아버지는 반대했다. 원래 계획대로 일본 유학을 권했다. 그러나 손요는 뜻을 굳히지 않았다. 엄마의 지원을 등에 업고 한국행을 실천했다.

한국외국어대학 어학당에서 1년 동안 한국어를 배운 뒤 2003년 경희대 무역학과에 입학했다. 겁없이 한국 생활에 적응했다.

"도서관에서 마음에 드는 사람이 있으면 다짜고짜 먼저 가서 친구하자고 이야기를 건넸어요. 그럼 상대방도 '쿨'하게 오케이 하더라구요. 그러다 룸 메이트로 발전한 경우도 있었어요. 이런 식으로 한국 사람들을 빨리 이해할 수 있었고, 문화도 빨리 알게 됐어요."

손요가 외국인들의 토크쇼인'미녀들의 수다'와 인연을 맺은 것은 경희대 3학년 때. 휴학계를 내고 필리핀과 캐나다로 어학 연수를 다녀온 복학을 준비하고 있었다.

"외대에 다니던 중국인 친구 샹팡이 방송국 아르바이트가 있으니 함께 가자고 했어요. 처음에는 방청객으로 나가는 것이라 생각하고 거절했어요. 그런데 그런 것이 아니라며 또 연락이 와 함께 출연하게 됐어요. '미수다'에 출연하면서 많은 도움을 받았고, 여러 나라 친구들도 사귀게 됐어요."

손요는 '미수다'에 출연해 평소에 보고 느낀 한국인과 한국 생활에 대해 이야기했다.

인연은 또 다른 인연을 만들었다. 베이징 올림픽을 앞둔 2007년 '중국 안내서'를 내자는 제의가 들어왔다. 모두 '미수다'의 영향력 덕이었다.

책을 썼다. 한국과 중국의 문화 차이와 중국에서 필요한 정보를 종합한 손요의 '이것이 차이나'를 출간했다. 그리고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이 열리자 KBS의 리포터로서 활기차게 활동했다. CCTV에서도 한국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의 진행을 맡길 정도로 활동 폭을 넓혀 나갔다.

차츰차츰 한국을 깊이 있게 알게 됐다. 다문화 가정의 현실도 보게 됐다. 지난해에는 다문화가정 어린이의 우정을 그린 '니 하오 중국, 쿵후 소년 장비'란 한글 동화까지 냈다.

"한국 사람들은 참 정이 많아요. 애국심도 강하고, 단결력도 있구요. 아주 부지런하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돼요. 그리고 윗사람을 공경하고, 부모에 대한 존경심과 효심이 보기 좋아요."

좋은 점만 보이는 것은 아니다. 나쁜 면도 봤다.

"한국사람들은 너무 빠르게 살아요. '빨리 빨리'가 일상이에요. '만만디'인 중국 사람들이보면 엄청나게 빨라요. 조금은 여유를 가져도 될 텐데요."

손요는 아직도 식사 시간이 부담스럽다. 상대의 속도를 따라가느라 자주 체 하곤 한다. 아침을 간단하게 먹는 습관 때문에 푸짐한 아침도 부담스럽긴 마찬가지다.

그러나 한국 음식을 이것 저것 가리진 않는다. 삼겹살, 갈비찜, 설렁탕 등을 좋아하는 것을 보면 체질까지 바뀐 듯 하다.

"설렁탕에 깍두기 국물을 생각하면 입 안에 침이 고일 정도에요. 김치는 젖갈이 들어간 경상도식이 좋구요. 참, 비빔밥은 너무 좋은 음식이라고 생각해요. 식이식품인 야채가 들어있고, 계란의 단백질, 밥의 탄수화물 등 모든 영양분을 골고루 섭취할 수 있는 건강식이잖아요."

손요는 오랫동안 사귀던 한국인 남자 친구와 2년 전에 헤어졌다. 그래도 한국 남자가 좋단다. 앞으로 기회가 되면 "한국 남자와 결혼하고 싶다"고 거침없이 말한다.

지금은 벌려 놓은 일부터 차곡차곡 풀어나가려 한다.

사가와 준코(25·일본), 아만다 카심(23·인도네시아), 타차폰 와자삿(22·태국)과 함께 취입한 노래 '우리는 하나'와 'We love Korea'의 음원 수입과 지난해 1월 론칭한 쇼핑몰 '로맨틱 스캔들'의 수익 일부도 경제 형편이 어려운 다문화 가정을 돕는데 기부하기로 했다.

나누기 회원들과 함께 매월 2차례 홀트아동복지회에서 운영하는 고양시 장애인복지관을 방문해 봉사 활동도 계속할 것이다.

"한국에 와서 '우리'라는 말을 들었을 때마다 벽을 느끼곤 했어요. 한국 사람들은 단일 민족이다 보니 아직도 외국인이나 혼혈에 대해 완전하게 자유롭지 않은 것 같아요. 방송을 통해 조금이나마 알려진 우리들이 작은 힘이 되고 싶어요."

중국에서 사춘기를 보낸 손요는 한국에서 건강한 젊은이가 됐다. 그 사랑을 되돌려 주면서 언젠가 한국과 중국을 잇는 '작은 다리'가 되는 것이 큰 바람이다.

글=이창호기자
사진=김지곤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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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http://news.nate.com/view/20100416n141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