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이별을 통해 배우는 것이 더 많습니다
아름다운 죽음은 행복한 삶만큼이나 많은 이들이 소망하는 것이다. 하지만 행복한 삶이 저절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듯 아름다운 죽음 역시 저절로 찾아오는 것이 아니다. 만약 당신이 어느 날 병원에서 불치병에 걸렸다는 판정을 받는다면? 대부분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충격에 빠질 것이다. 미국의 정신과 의사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 박사는 〈죽음과 죽어감 on Death and Dying〉이라는 저서에서 불치병 판정을 받은 환자가 임종 때까지 겪게 되는 심경의 변화를 부정, 분노, 타협, 우울, 수용의 5단계로 나눠 설명했다. 퀴블러 로스에 의한 죽음의 단계는 이처럼 5단계로 끝난다. 그러나 일본 상지대 명예교수인 알폰소 데켄 신부는 여기에 한 단계를 더 추가했다. 바로 죽음에 대한 기대와 희망이다. 일산병원 호스피스 자원봉사팀장 서봉원 씨(70세). 그는 시한부 삶을 선고받은 환자들에게 바로 이 죽음에 대한 기대와 희망을 심어주기 위한 인생의 마지막 과정을 함께 하는 동반자로 그의 인생 2막 누구보다 행복하고 풍요롭게 살아가고 있는 아름다운 사람이다.
잘 나가던 사업이 고비를 맞으면서, 새로운 사명 ‘봉사’에 나서다
“오
늘이 마침 환자들이 목욕을 하는 날이라...좀 분주하죠?” 인터뷰 약속이 있던 지난 화요일, 일산병원 131병동 상담실에
들어서자 목욕봉사 준비로 바쁜 서봉원 팀장이 따뜻한 미소로 맞는다. 그는 매주 화요일과 토요일 일산병원 131병동에서 말기암
환자들을 위한 호스피스 봉사자로 9년 째 활동하고 있다. 이른 아침 김포의 집을 나서 목욕 세탁 마사지 등 신체케어부터 정신적
케어까지 힘들기도 하련만 “호스피스 봉사를 통해 얻는 기쁨과 보람으로 오히려 몸과 마음이 더 건강해졌다.”고 환하게 웃는다.
삶
과 죽음, 태어나면 누구나 죽는 것이지만 유독 우리는 죽음에 관한 이야기는 하기 꺼리는 경우가 많다. 하물며 매일 죽어가는
환자를 만나야 하는 호스피스 봉사란 쉽지 않은 일, 서 팀장이 호스피스 봉사를 하게 된 계기는 잘 나가던 사업이 한 차례 고비를
맞으면서. “저도 사는 것이 남과 다르지 않았어요. 어떻게 하면 사업이 잘 될까, 또 경제적인 여유가 잘 사는 것이라고
생각했고. 그러다 사업이 한 차례 고비를 맞으면서 파동이 일어나기 시작했죠.” 모태신앙인으로 교회에 나가긴 했지만 지금처럼
신실한 신앙심은 부족했었노라 고백하는 그는 사업의 고비를 계기로 새로운 사명이 분명 있을 것이라 믿고 열심히 기도를 드렸다고
한다. 그러던 중 가정의학과 전문의인 조카가 호스피스 봉사를 제의했고 그때 하나님이 주신 또 다른 사명이 바로 봉사자로서의 삶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호스피스 봉사자로서의 인생2막은 그렇게 시작됐다.
죽음은 끝이 아닌 삶의 연장선, 누구나 ‘웰 다잉’에 대한 준비가 필요하다
사
업이 고비를 맞으면서 신앙심이 더 깊어졌다는 서 팀장은 사업이 안정되고 나서도 사업은 다른 이에게 맡기고 9년 째 봉사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사업가에서 봉사자로 나선 그를 가족들은 탐탁하게 여길까? “원래 집사람이 먼저 교회에서 호스피스 교육을
받았어요. 그래선지 호스피스봉사에 대해 이해를 하는 편이지요. 봉사를 한다고 해서 사업에서 완전히 손을 놓은 것도 아니고,,,”
서봉원 팀장은 오히려 호스피스 봉사를 통해 삶에 대한 경건함을 배우고 어떻게 죽음을 맞을 것인가에 대해 많은 생각을 갖게 됐다고
한다. 태어나면서부터 이미 죽음은 정해진 일인데도 마치 자신에게는 일어나지 않을 일처럼 생각하다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죽음
앞에 원망과 미움을 남긴 채 떠나는 이별. 그런 뒷모습을 남기지 않기 위해 ‘웰 다잉’에 대한 죽음관이 180도 변했다고.
“임종을 앞둔 환자들에게 주로 하는 이야기는 내세관이죠. 죽음은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세계에 대한 시작이라고. 그런 믿음을 위해
가족 간 오해와 미움이 있었다면 화해와 용서를 하고 사랑을 간직한 채 아름다운 이별을 할 수 있도록 이야기를 들어주고 풀어내도록
돕는 일이 호스피스의 가장 큰 사명입니다.” 남은 삶이 얼마나 될지는 모르지만 말기 환자들에게 분노와 절망으로 남은 삶을
채워가는 것은 부질없음을 깨닫게 하는 것, 그래서 막연한 두려움에서 벗어나 죽음을 삶의 한 과정으로서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인간다운 존엄을 지키며 죽음을 맞을 수 있도록 돕는 일이야말로 호스피스봉사자로서의 가장 큰 보람이라고 한다. 하지만 임종을 앞둔
환자가 죽음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기까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처음엔 “당신이 그걸 경험해 보았냐, 어떻게 아느냐”고
반문하는 환자들이 대부분이라고. 시도 때도 없이 찾아오는 통증과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죽음이 눈앞에 있다는 두려움, 아무도
함께 할 수 없는 외로움에 빠진 그들이 처음엔 냉소를 보내지만 진심으로 대하다보면 나중엔 봉사자들을 가족보다 더 의지하게 될 때
눈물 나도록 기쁘다고 한다.
늘 죽음을 가까이 하면서도 역설적으로 더 기쁘고 충만한 삶
호
스피스 봉사는 환자가 임종할 때까지 목욕, 식사보조, 미용, 대소변 받기 등 신체적 봉사는 물론 말벗 등 정신적인 도움, 또
가족 부재 시 보호자 역할은 물론 편안한 죽음에 이르도록 종교적 인도 등 전인적인 봉사를 한다는 점이 특징이다. 심지어 장례절차
및 장지까지 동행할 때가 다반사다. 하지만 육체적으로도 힘들고 늘 죽음을 가까이 해야 하는 일임에도 역설적으로 정작 본인은 기쁜
마음으로 살게 되는 게 호스피스 봉사의 가장 큰 보람이라는 서 팀장. 누구나 세상사는 동안 ‘성공한 인생’을 꿈꾼다. 성공한
인생이란 과연 뭘까. 부와 명예, 아니면 권세를 갖는 것? 어쩌면 서 팀장에게 사업의 고비가 없었다면 그도 지금까지 그런 삶을
추구하며 살고 있을지 모른다. 인생의 위기를 호스피스봉사자라는 또 다른 이름으로 더 풍요롭고 지혜롭게 승화시킨 서봉원 팀장.
아름다운 이별을 준비하는 소중한 시간의 동반자로서의 그의 인생2막. 인터뷰가 끝나자 “목욕물이 식겠다.“며 바쁘게 목욕실로
향하는 그의 뒷모습이 봄 햇살보다 더 따뜻하고 환하다.
이난숙 리포터 success62@hanmail.net
'고양소식'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밥 푸고 포옹하고 트위터 중계하고 … 소통 강화 ‘열린 취임식’ 눈길 (0) | 2010.07.02 |
---|---|
산처럼 바다같이 자원봉사단의 6월 먹거리 & 재능나눔 봉사 (0) | 2010.06.23 |
미용사업으로 자수성가한 위운미 집사, 어려운 이웃 위해 사랑의 전천후 봉 (0) | 2010.06.21 |
일산스피존, 벧엘의 집에 컴퓨터 기증 (0) | 2010.06.21 |
효의 의미 되새긴 풍성한 ‘경로잔치’ (0) | 2010.06.21 |